[박근종 칼럼] 문명사적 대전환기, 혁신·구조개혁 없으면 위기 극복과 성장은 연목구어

편집국 / 기사승인 : 2025-09-12 13: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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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전, 소방준감)
미국발(發) 관세 인상으로 촉발된 보호무역(Protective trade) 확산, 갈수록 격화일로(激化一路)의 미·중 패권 경쟁, 장기화하는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까지 세계는 전례 없는 복합 위기 상황 속에 놓여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고 교역 질서가 불안정해지는 가운데, 인공지능(AI)으로 상징되는 기술 혁신은 경제와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어느 때보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진폭이 크다는 점에서 ‘문명사적 대전환기’라는 학자들의 진단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대전환기 항해하는 인류의 새 도전’이라는 주제로 지난 9월 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26회 세계지식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쥐스탱 트뤼도(Justin Trudeau)’ 전 캐나다 총리의 발언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국제 규범 질서가 흔들리며 교역과 성장이 위축되고 있다”라고 경고하면서, 다음 달 한국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국제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한국이 보다 주도적이고 책임 있는 ‘리더십(Leader ship)’을 발휘해주길 기대한 것이다. 이날 토론은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의 “강대국은 제도를 만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한다. 그러한 점에서 APEC이라는 경제체제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는 주장으로 시작했다.

특히 과학기술 경쟁은 산업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중국은 ‘천인 계획(Thousand talent program)’을 앞세워 세계 각국의 인재를 흡수하며 일부 첨단 분야에서 한국을 넘어섰다. 미국은 이에 맞서 자국 기술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제3국을 통한 장비 이전까지 제한하고 있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영국 런던 채텀하우스(Chatham House)의 ‘로빈 니블릿(Robin Niblett)’ 석좌연구원이 지적했듯, 강대국들은 경제력을 무기 삼아 타국의 선택과 정책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한국으로서는 신기술 개발 역량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기술과 인재 유출까지 막아야 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고 있다. 특히 AI 기술 주권 확보와 함께 이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에너지 체제로의 전환은 시급한 국가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을 통해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3대 비전’을 제시했다. 제1호는 ‘성장’을 제시하면서, “민생위기 극복과 혁신을 통한 경제 대도약으로 ‘진짜 성장’의 시대를 열겠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중점전략과제 제2호는 ‘코스피 5,000시대’, 제3호는 ‘모두의 AI’로 각각 결정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민생 회복 소비 쿠폰’ 지급, 728조 원의 역대급 예산 증액 편성 등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왔다. 지난 8월 25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당초 25%로 예고됐던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는 합의를 끌어냈다. 내수에 군불을 지피고, 최악의 수출 위기는 일단 모면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의 올해 잠재성장률 전망치를 1%대로 하향 조정하는 등 경제위기의 징후가 여전히 짙게 드리운다. 잠재성장률 3%를 목표로 잡은 이 대통령의 ‘진짜 성장’ 공약 달성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격변의 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 정쟁에만 매몰된다면 세계 질서의 변화에 대응할 기회를 송두리째 놓칠 수밖에 없다. 국가 지도자는 물론이고, 국민 개개인 모두 열린 자세로 변화를 받아들이고, 위기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세계지식포럼에서 제시된 다양한 혜안을 전략적으로 내재화할 때, 다가올 격변을 성장 기회로 바꾸며 밝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더구나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은 기업의 투자·고용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혁신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여권은 규제 혁파보다는 되레 기업 옥죄기에 매달려온 것도 사실이다. ‘노란봉투법’을 강행 처리했고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사가 이사를 선임할 때 집중투표제를 의무적으로 적용하는 ‘더 센 상법’을 통과시켰으며 이달에는 기업 보유 자사주 1년 이내 소각을 의무화하는 ‘더욱더 센 상법’을 처리할 태세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월 10일 “시장을 가장 잘 아는 기업을 중심에 두고 기업과 상시 소통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실은 이 대통령 참석 하에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인공지능(AI) 등에 투자할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 펀드’ 조성 계획을 공개했다. 그러나 말로만으로는 “기업 중심” 투자 활성화를 유인해낼 수 없음을 우리는 학습을 통해 잘 알고 있다. 정부 주도의 막대한 펀드도 재원을 법인세를 올려 걷으려는 심사라면 조삼모사(朝三暮四) 논란만 부를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민생위기를 극복하고 혁신 경제로 진짜 성장을 열기 위해서는 돈 풀기 위주의 땜질 미봉책(彌縫策)을 넘어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만 한다. 취임 100일을 맞은 지금 이재명 대통령은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창업하고 성장하며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하겠다.”라고 했던 취임 연설을 되새겨봐야 할 때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그동안 구조개혁이 절실하다는 쓴소리를 해왔다. 2023년 단기 정책으로 구조적 저성장을 해결하는 것은 “나라가 망가지는 지름길”이라고 했고, “10년 넘게 중국 특수(特需)에 취해 우리 산업이 한 단계 더 높이 가야 할 시간을 놓쳤다.”라고 했다. 지난해엔 “높게 매달린 과일을 수확하려면 어려움이 수반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올해 2월엔 “정부가 뼈아프게 느껴야 할 것은 지난 10년간 새 산업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했다. 창조적 파괴에 수반되는 고통을 외면하니 맨날 제자리걸음인 셈이다. 이제 편하게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과일은 다 따먹었다는 것이다.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려면 시끄럽고 불편한 논쟁을 피하면 안 되는데 우리는 정면승부를 외면하며 요행만 바라고 있다.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지적은 경제학계의 단골 경고다. 지난해 12월 11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 원장은 ‘한국경제 생산성 제고를 위한 개혁방안’을 주제로 한 ‘2024 KDI 컨퍼런스’의 개회사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빠르게 성장해 온 우리나라가 1990년대 이후로는 지속적인 성장률 하락 추세를 경험하고 있다.”라고 말하고 “노동과 자본이라는 요소 투입에 의한 성장은 한계에 봉착했다.”라며“사회 전반의 생산성 향상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지탱하는 유일한 버팀목”이라며 노동시장 개혁, 교육을 통한 사회 이동성 강화 등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재명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경제 성장도 혁신과 구조개혁 없이는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격인 연목구어(緣木求魚)일 뿐이다.

무엇보다 통계청이 지난 9월 10일 발표한‘2025년 8월 고용동향’에 의하면 세대 간 고용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고령층 취업자가 1년 전보다 40만 명 늘어난 데 비해, 청년층은 22만 명 줄어들었다.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지난 6월 청년층을 처음 앞지른 뒤 석 달째 고공행진을 하는 동안 청년층 취업자는 16개월째 감소세를 이어갔다. 8월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전체 고용률도 고령층이 만들어낸 수치였다. 30대에서는 구직활동조차 포기한 ‘쉬었음’ 인구가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일자리는 기업에서 만들어진다. 사회 진출의 통로인 청년 일자리는 특히 더 그렇다. 산업별 취업자 통계는 이러한 상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보건·복지·숙박·음식점 등의 취업자가 늘어난 데 반해, 청년 일자리가 많은 건설과 제조업은 각각 16개월, 14개월째 감소세를 보였다. 기업이 몰려 있는 산업 분야의 장기간 취업 부진은 일자리 창출 엔진이 그만큼 식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청년들이 일할 의지를 잃고 경제활동을 포기한 건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탓이다. 기업들이 경력직 위주로 채용에 나서고 단순·반복 업무는 인공지능(AI)이나 고령층으로 대체한 여파이기도 하다.

단군 이래 최고 ‘스펙(Specification)’을 가진 이들이 쉬고 있는 청년 고용 문제의 근본 해법은 기업 활력을 제고(提高)하고, 노동시장에 유연성을 불어넣을 정책적 결단을 실행으로 옮겨야만 한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10일 청년이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기 위해 276억 원을 들여 주 4.5일제 도입을 지원하겠다는 ‘청년 일자리 첫걸음 보장제’를 밝혔다. 이른바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중시하는 젊은 층은 반길지 모르겠지만, 고령화 영향 등으로 떨어지는 노동생산성이 고민인 기업이 적극적으로 호응할 리는 만무해 보인다. 호봉제 탓에 생산성과 무관하게 임금을 또박또박 올려줘야만 하는데 어느 기업이 신규 채용을 대거 하려 들지 의문이 앞선다.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노동시장 경직(硬直)을 해소하고 직무·성과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해야만 비로소 청년 고용 한파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청년 고용 위기는 국가 존립마저 위협을 한다. 취업이 막히면 혼인·출산이 힘들어지고, 저출산은 심화 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세대 간 상생뿐이다. 정년 연장보다는 퇴직 후 재고용으로 기업 부담을 줄이고, 임금체계는 서둘러 성과급제로 바꿔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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