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충격…반도체 사이클 영향 미미" 관측도

호르무즈 봉쇄에 유가급등 우려↑ [세계타임즈 자료사진]
[세계타임즈 = 이현진 기자] 국내 금융시장이 4일 이란 사태 장기화 관측에 종일 패닉 상황을 빠져나오지 못했다.근래 가파르게 올랐던 주가가 일순간 폭락세로 돌아섰고, 원/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가 동반 상승하면서 실물경제 충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도체 중심의 수출 증가세가 여전히 유효한 만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여파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됐다.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점은 '유가 상승→물가 상승→금리 상승→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전이 경로다.
유가가 높은 상태로 유지되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금리가 오르고, 재정적자 부담이 확대되는 동시에 가계 이자 부담도 가중되는 '도미노'가 벌어질 수 있다.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지연 전망이 무게가 실리면서 금융시장 충격도 한층 커질 수 있다.당장 고유가 장기화 시 우리나라 성장률은 최소 0.1∼0.2%포인트(p)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유 수입국인 만큼 유가 변동성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0.2%p 남짓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지배적 분석이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현재 수준이 머무르면 성장률을 0.1%p 하락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정부 재정정책으로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아직은 잠재적 위협 요인"이라고 말했다.물가에 관해선 "원화 약세가 동반되면서 유가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며 "0.3%p 또는 그 이상의 상방 리스크가 발생한다"고 말했다.한은도 지난 2024년 5월 경제전망 당시 중동 지역 분쟁이 상당히 악화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규모가 확대될 경우 그해 경제성장률이 0.2%p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이 0.3%p 상승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이어 같은 해 11월 전망 때도 러·우 전쟁이 길어지고 중동 갈등이 심화할 경우 이듬해 경제성장률이 0.1%p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이 0.2%p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국제 유가는 기존 전망치를 이미 넘어선 상황이다.한은은 지난달 26일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제시하면서 브렌트유 가격을 상반기 배럴당 65달러, 하반기 63달러로 각각 전제했는데, 간밤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81.4달러에 달했다.유가가 심리적 마지노선인 100달러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바클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혼란이 지속될 경우 브렌트유가 최고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전 세계가 잠재적인 원유 공급 차단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JP모건도 "호르무즈 해협 항행이 거의 완전히 중단된 사태는 현대사에서 처음"이라며 "유가가 실질적 중단 규모, 지속 기간, 전략 비축유 규모 등에 좌우될 것"이라고 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전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연평균 유가가 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성장률이 0.3%p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2%대 성장이 요원해지는 셈이다.환율 급등과 주가 급락에 따른 실물경제 충격도 우려되는 점이다.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30분 기준)는 전날보다 10.1원 오른 1,476.2원으로 집계됐다.환율은 이날 오전 10시34분께 1,484.2원까지 뛰어 미국발 관세 충격이 거셌던 지난해 4월 9일의 장중 1,487.6원이나 수급 불균형이 확대됐던 지난해 12월 24일의 장중 1,484.9원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달했다.이날 0시22분께 1,505.8원까지 올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2일(장중 최고 1,500.0원) 이후 처음 1,500원을 찍기도 했다.
이란 사태로 위험 회피 심리가 확대되면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달러 선호가 높아진 점이 가파른 환율 상승의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중동 상황에 따라 환율이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외국인 자금이 급속히 이탈하는 흐름이 계속 이어진다면 환율 상방이 더 열릴 수 있다"며 "앞으로 트럼프 발언 강도, 미 지상군 투입 여부 등에 따라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도 "유가 쇼크가 장기화하면서 전 세계 고물가, 고금리, 경기 위축이 가시화한다면 환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이례적인 고환율 흐름은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면서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이런 가운데 중동발 리스크는 증시 호조에 따른 내수 활성화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코스피는 전날보다 698.37포인트(12.06%) 내린 5,093.54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하락률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 12일(-12.02%)을 넘어 역대 최대였다. 낙폭 기준으로도 전날(-452.22p)에 이어 이틀 연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전문가들은 주가 조정이 장기화할 경우 소비심리 위축 등으로 파급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본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식시장이 지난주만큼 다시 반등하지 못할 경우 자산 효과로 소비가 늘 것이라는 기대도 꺾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특히 한은 전망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내수의 순성장 기여도는 1.4%p에 달해, 모처럼 수출(1.0%p)을 앞질러 성장을 견인할 것으로 분석됐다.내수 회복세가 둔화하면 그만큼 경기 반등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유가와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져 내수 경제에 치명적"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이란 사태가 중장기적인 경기 하락을 촉발할 것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박정우 이코노미스트는 "중동발 충격이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며 "미국이 중간선거를 앞둔 가운데 전쟁 장기화에 필요한 정치적 명분이나 경제적 이익 모두 불분명하기 때문"이라고 관측했다."중동발 충격이 반도체 사이클에도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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